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메밀꽃 필 무렵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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여름 장이란 애시당초에 글러서, 해는 아직 중천에 있건만 장판은 벌써 쓸쓸하고, 더운 햇발이 벌여놓은 전 휘장 밑으로 등줄기를 훅훅 볶는다. <br>
마을 사람들은 거지반 돌아간 뒤요, 팔리지 못한 나뭇군 패가 길거리에 궁싯거리고 있으나, 석유병이나 받고 고깃 마리나 사면 족할 이 축들을 바라고 언제까지든지 버티고 있을 법은 없다. <br>
날아드는 파리 떼도 장난꾼 각다귀들도 귀치 않다. <br>
얼금뱅이요, 왼손잡이인 드팀전의 허생원은 기어이 동업의 조선달을 보았다. 그들은 오늘은 그만 파하기로 하였다. <br>
조선달은 그 날 산 돈을 따지는 것을 보고 허생원은 말뚝에서 넓은 휘장을 걷고 벌여놓았던 물건을 거두기 시작하였다. 무명필과 주단바리가 두고리짝에 꼭 찼다. <br>
멍석 위에는 천 조각이 어수선하게 남았다. 다른 축들도 벌써 거진 전들을 걷고 있었다. 약빠르게 떠나는 패도 있었다. <br>
어물장수도, 땜쟁이도, 엿장수도, 생강장수도, 꼴들이 보이지 않았다. 내일은 진부와 대화에 장이 선다. <br>
축들은 그 어느 쪽으로든지 밤을 새며 육칠십리 밤길을 가지 않으면 안된다. 장판은 잔치 뒷마당같이 어수선하게 벌어지고 술집에서는 싸움이 터져 있었다. <br>
주정꾼 욕지거리에 섞여 계집의 앙칼진 목소리가 찢어졌다. 장날 저녁은 정해 놓고 계집의 고함소리로 시작되는 것이다. 그다지 마음이 당기지 않는 것을 좇아갔다. <br>
허생원은 계집과는 연분이 멀었다. 얼음뱅이 상판을 쳐들고 대어설 숫기는 없었으나, 계집 편에서 정을 보낸 일도 없었고, 쓸쓸하고 뒤틀린 반생이었다. <br>
충줏집을 생각만 하여도 철없이 얼굴이 붉어지고, 발밑이 떨리고 그 자리에 소스라쳐 버린다. 충줏집 문을 들어서서 술좌석에서 짜장 동이를 만났을 때에는 어찌 된 서슬인지 발끈 화가 나 버렸다. <br>
상위에 붉은 얼굴을 쳐들고 제법 계집과 농탕치는 것을 보고서야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. <br>
녀석이 제법 난질꾼인데, 꼴사납다. 머리에 피도 안마른 녀석이 낮부터 술 처먹고 계집과 농탕이야. 장돌뱅이 망신만 시키고 돌아다니누나.
그 꼴에 우리들과 한몫 보자는 셈이지. 동이 앞에 막아서면서 부터 책망이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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